What I have learned during Temple Stay in Korea

계획했던 것 보다 한국에 더 길게 머무르는 바람에 좋은 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는 바로 친구들과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국내 및 해외에 사는 친구들이 부산을 방문해주어 덕분에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놀러온 Adrian과 John, 토론토에서 와준 Xenia, 그리고 서울에서 놀러온 지석이와 경주에서 온 사랑스러운 은경이 언니까지.

그 중에서도 John이 왔을 때는 내가 번역 일을 조금 쉬고 있을 때라 시간이 남아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여러가지 일정 중에서도 함께 했던 템플스테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내가 경험했던 템플스테이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템플스테이(Temple Stay)

템플스테이 = 템플(temple) + 스테이(stay) = 절에 머무르기. 말 그대로 절에서의 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이다.

요즘 국내 TV에서 연예인들이 절에서의 생활을 체험하는 것도 많이 보여지기도 하고 미국에 있을 때에도 아시아 국가(한국,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인도 등)를 여행하는 친구들이 템플스테이를 계획하는 것을 보곤 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한 친구가 태국에서 일주일 간 묵언수행을 했던 경험을 들려 준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친구의 달라진 분위기에 흥미를 느끼며 ‘나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 생각했었다.

John이 부산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행을 계획하다가 템플스테이를 떠올렸다. 구글에서 한국어로 [템플스테이]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웹사이트(https://www.templestay.com)를 이용해 부산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총 16개의 절 가운데 John의 숙소가 있는 서면에서 가장 가까운 “선암사”로 결정했다.

선암사

우리가 가는 선암사는 백양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절이다. 서면역에서 택시를 타고 올라가는데 자칭 부산 토박이라고 하시는 택시 기사님께서 선암사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셨다. 당연히 택시 기사님이라고 모든 곳을 아실 수는 없으니 “기사님, 네비에 ‘선암사’ 찍어보시면 나올꺼예요.” 했는데 기사님이 자꾸 글자를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하시고 “검색” 버튼을 안누르시고 “거기가 어디지..” 하며 서면 시내를 돌아 가셔서 화가 날뻔했지만 ‘마음을 비우러 가는데 지금부터 조바심 내지 말자…’ 하고 참을 인자를 가슴에 세기고 있던 찰나에 선암사에서 전화가 왔다.

선암사에서 전화를 건 이유는 John이 외국인인데 영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깜빡하고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미 가는 길이어서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John에게는 내가 통역을 해주겠다고 안심시켰다. (선암사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내/외국인을 모두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통역 서비스는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참고해야 하겠다.)

우리가 체험을 한 날은 매미가 쨍쨍하게 우는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입구가 나왔다. 절은 아무도 없는 듯이 조용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서로 속삭이며 대화를 했다.

“I think that is where we are supposed to go.”

나는 안내소로 보이는 곳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아까 전화가 왔던 그 번호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안내해 주시는 분(후에 “보살님” 또는 “팀장님”으로 부르게 된 분)을 만나 우리가 하룻밤을 묵게 될 숙소로 올라갔다. 절에 대해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생각보다 깔끔한 시설에 조금 놀랐다. 푸세식 화장실이면 어쩌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널찍한 수세식 화장실과 방에는 천장형 에어컨까지 달려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각각 다른 방에서 지내며 방 하나는 두 명 정도 함께 쓰기에 적당한 크기의 작은 방이었다 . 마침 템플스테이를 하는 분이 있어서 우리까지 총 세 명이 프로그램을 함께 하게 되었다.

짐을 숙소에 풀고 옷을 갈아 입은 후 대웅전 앞에서 스님을 기다렸다. 우리를 인솔해 주시는 스님은 웃는 얼굴로 반겨 주시면서 모두에게 막대 사탕을 하나씩 주셨다. 길고 커다란 승려복 소맷깃을 한 손으로 잡고 막대 사탕을 건네 주시는데 어쩐지 부조화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스님은 차분하고 상냥하신 목소리로 천천히 절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우리가 서 있는 대웅전이 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라는 설명과 함께 다른 건물들의 이름과 유래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스님이 설명해 주시는 동안 몇 문장을 듣고 John에게 영어로 통역해 주고, John이 질문이 있을 때는 스님께 한글로 통역을 해드렸다. 평소에 절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불교 용어는 생소하기도 해서 John이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스님이 통역하는 동안 기다려 주셔서 많이 도움이 되었다. 스님이 불교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해주실 때나 우리 스스로의 인생을 되돌아볼만한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는 시간을 가지고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통역을 해야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스님의 말씀도 더 집중해서 들었고 또 확실히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으면 곧바로 질문하면서 통역을 해나갔다.

스님과 포행하고, 108배를 함께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면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SNS와 같은 그 어떤 외부의 방해도 없이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인지 절에서 스님과의 1박 2일은 속세에서의 일주일 그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템플스테이가 끝나고 나서 스님, 함께 템플스테이를 했던 친구, John, 모두 친분이 생겨 헤어질 때 아쉬움이 들었다. 1박 2일 동안 스님께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정말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것 두 가지를 정리해 보고싶다.

  1. “진정한 선행”의 의미란 무엇인가.

스님이 물으셨다. “선행이란 무엇인가?“
나는 “선행이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있는가?”
“상대방에게 이득이 될 만한 행동을 하거나 물질적으로 베푸는 것을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는 이런 생각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하시며
“불교에서의 선행이란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쁜 행동이란 생각이나 말, 행동을 통해 죄를 짓는 것을 말하는데, 스님께서는 특히 나쁜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이라 강조하셨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 질투, 실망, 분노 등의 이유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생각을 하면 그 자체가 결국 돌아와 나의 번뇌가 되니 생각해 보면 나쁜 생각은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생각이다. 스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한 나의 행동이 진정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고 질문하셨다.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상대방에게 득이 되고자 했던 행동이 상대방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다 주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남을 “위해” 어떤 행동을 했을 때에는 그만큼 남에게 기대하는 일이 생기고, 바라는 만큼 되돌려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실망, 분노, 좌절, 고통의 번뇌로 귀결되니, 이게 진정 남을 위하는 방법인지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하셨다.

2. 108배는 생각보다 할 만하다.

절에서의 아침은 정말 일찍 시작된다. 그 말은 밤도 일찍 시작 된다는 뜻이다. 나같은 도시 사람에게는 밤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저녁 9시에 모두 잠자리에 드는데, 그 전에 스님과 함께 108배를 하는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큰이모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셨다. 나는 큰이모를 따라 절에 가서 스님들과 함께 절밥을 먹고 절에서 이모와 함께 부처님께 절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20년도 더 된 기억이라 몸이 기억할 리가 없었다. 다행히 108배가 있기 전 저녁 예불을 할 때 보살님께서 부처님께 절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그 덕분에 수업이 끝난 후에는 자신감 있게 부처님께 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1. 절에 들어가고 나올 때 문 앞에서 반배 (합장은 가슴 앞 45도)
  2. 향을 피우거나 사주를 하기 전과 후에도 반배
  3. 포단(방석같은 앉는 자리)을 깔고 중앙에 계신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시작하기 전에 반배
  4. 삼배를 할 때 오른 발을 아래에
  5. 이마, 양 손, 양 무릎이 바닥에 닿도록
  6. 엎드린 자세에서 양 손을 귀 높이까지 떠 받들기
  7. 합장한 자세에서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나기
  8. 삼배가 끝난 후 반배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기억이 생생하지 않다. 제대로 절 하는 법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자세히 나오지만, 위의 8가지 포인트만 알아도 초보 예불자로 크게 실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108배는 대웅전 바로 옆 아담한 극락전에서 준비되었다. 저녁 예불에서 배운대로 절을 하되 절을 하는 동안 참회할 것, 감사할 것, 발원할 것을 각각 생각하며 스님과 함께 절을 108번 하게 될 것이라고 보살님께서 설명해주셨다. 안으로 들어가 준비된 108배 수행 CD에 맞춰 108배가 이루어졌다. 60가지의 참회, 20가지의 감사, 28가지의 발원을 되뇌이며 108배를 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몸의 피로감보다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 더 크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조금 서툴렀던 절을 하는 자세도 108배를 하는 동안 좀 더 매끄러워졌고 속세에서 그동안 나의 행동들을 반성하고 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시간이 참 의미있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생각하며 절을 하는 발원 부분에서는 내 삶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108배가 모두 끝난 후 가벼운 몸의 피로감과 함께 목표했던 만큼 해냈다는 성취감까지 느끼며 스님과 함께 모두 자리에 둘러 앉았다. 잠시 후 보살님께서 시원한 구기자차와 쿠키를 가져다 주셨다. 산 속에 있는 조용한 절에서 저녁의 선선한 공기를 느끼며 시원한 차를 마시고 앉아 있으니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 지는 것을 느꼈다. 스님이 들려 주시는 불교 이야기들을 들으며 평소에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도 하고 서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가끔 정말 기억에 남는 일들은 그날의 분위기와 내가 느꼈던 느낌, 공기의 냄새까지도 생생할 때가 있는데, 이 날도 그런 기억들 중 하나로 남았다. 마음이 평온하고 정리된 느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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