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맨 에피소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

이 글은 이전 포스팅 [Burning man episode: The best coffee in the world]의 한글 버전이지만, 추가/삭제/수정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버닝맨에서 아침 시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보통 아침은 타는 듯이 덥고 밤은 모피 코트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춥다. 이대로 자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살기 위한 본능에 잠에서 깼다. 간밤에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축축하게 젖은 담요를 더듬으며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급하게 텐트 지퍼를 열어 숨을 쉬는 것이었다. “우와!” 겨우 숨을 고른 후, 간단히 가방을 챙겨 텐트를 정리하고 나왔다.


스무 명 남짓한 우리 캠프 멤버들 모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방으로 가서 백팩에 마실 물을 담았다. 버닝맨에서 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막이기 때문에 금방 탈수 증세가 오기도 하고, 종일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온종일 다른 캠프들에서 나눠 주는 “알코올”을 숙취 없이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이다.
물을 채운 후 주방 옆 거실 공간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고민을 하며 책자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커피”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지금은 매일 커피를 즐기기도 하고, 또 좋은 커피를 찾아다닐 정도로 커피 향과 맛에 빠져 있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나는 커피를 그다지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별생각은 없었지만 새로운 친구들이 “같이 갈래?” 하는 상황에, 딱히 다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 어깨를 으쓱 하며 “Ok”하고 따라가기로 했다.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친구들은 Sam, John, Jake, Caleb, 나까지 총 5명. 모두 각자의 자전거에 올라타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 친구 Caleb은 흰색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모두가 흰색 옷을 함께 입는 “White theme” 날이어서 그랬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버닝맨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 버닝맨이 아니었다면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독특한 옷을 다들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막 한가운데 정말로 “커피숍” 이 있었다. 자전거를 커피숍 입구에 대고 자물쇠를 잠그는 동안 벌써 커피 향이 물씬 풍겼다. 우리는 모두 신나는 마음으로 커피숍 입구로 들어섰다.


제 1장. 수상한 모습의 웨이터

입구에는 우리를 환영해주는 웨이터가 서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도대체 몇 살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남자였다. 내가 보통 백인 남자들 나이를 잘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 하도 독특해서,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나이를 추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우리가 들어가도 괜찮은 것인지 헷갈렸다. 그냥 들어가면 진짜 커피를 준다고?
지금의 내 기억으로는, 그 웨이터는 엄청나게 큰 반짝이는 보라색 모자를 쓰고 보라색과 검은색이 교차된 세로 줄무늬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 안에는 아무 셔츠도 입지 않아서 가슴 털이 보였다. 바지는 영화 알라딘에 나오는 의상처럼 푹신푹신한 엠보싱이 들어가 있고 신발은 코가 뾰족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 남자의 수염이 인상적이었는데, 회갈색 느낌의 살짝 꼬부라진, 옆으로 누운 S자 모양의 콧수염이 양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동 지역에서 온 마술사 같기도 하고, 동화 “앨리스”의 상인 같기도 했으며,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영화 속 움파룸파족과 함께 일하는 매니저 같기도 했다.

제 2장. 웨이터와 인사 나누기

우리가 자전거에서 내리자, 그 웨이터는 활짝 미소 지으며 한 명씩 안아주면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곳에는 따로 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밧줄이 가로막고 있어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웨이터가 밧줄을 옮겨 주었다. 입구에서 맡는 커피 향만으로도 벌써 심상치 않은 커피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일반” 인스턴트 커피의 향이 아니었다.

제 3장. 커피 테이블

안으로 들어서자 여러 개의 둥근 커피 테이블이 보였다. 내가 팔로알토에 살 때 혼자 가곤 했던 스탠포드 몰 안에 있던 커피숍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짝 낡고 먼지가 묻은 테이블들이었지만 그래서 더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흰색 둥근 테이블 가장 자리에는 남미 분위기의 황토색 장식이 올려져 있었다.

제 4장. 메뉴

우리가 자리에 앉자, 아까 그 웨이터가 메뉴판을 네 개 갖다주었다. 이런 장소에 커피 메뉴판까지 있다니! 이런 사막에서 방금 갓 내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 기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커피 테이블, 웨이터(커피숍에서 웨이터를 본 적이 있던가?!), 거기다 메뉴판까지? 더 놀라운 사실은, 메뉴판조차도 일반 종이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에서 볼 만한 최고급 메뉴판이라는 것이었다. 메뉴판 소재는 두툼하면서도 반짝반짝하게 코팅된 아이보리색 종이였다. 메뉴판을 잡으면 부드럽고 반짝한 질감이 과하지 않게 손에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후, 웨이터가 한쪽 팔에 흰색 수건을 네모반듯하게 걸치고 다가와서,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기대에 가득 차서 조심스럽게 메뉴를 펼쳤다. 메뉴 오른쪽 페이지의 정 중앙에 조그마한 글씨로(아마 글자 크기 11pt 정도) “espresso”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글자는 그게 전부였다. 다른 메뉴는 없었다. 메뉴 안쪽에 쓰여 있는 글씨는 “espresso” 가 다 였기 때문에 글자가 눈에 쏙 들어왔다.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고 시침을 뚝 떼며 글자를 가리켰다.
“음, 오늘은 왠지 에스프레소가 끌리네요. 저는 에스프레소로 할게요.”
“탁월한 선택이군요! 마침 우리가 제일 자신 있는 메뉴가 에스프레소거든요. 이 근처에서 제일 잘할걸요?”
웨이터는 메뉴를 받아 들고 바리스타에게 넘기며 “Five” 라고 말했다.

제 5장. 커피

주문한 커피는 작은 에스프레소 컵에 세트로 된 받침과 함께 나왔다. 우리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새끼손가락을 우아하게 올리고 컵을 들어 올렸다.
“우와, 진짜잖아? 이 근방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인데?”
커피는 향이 깊고 진했다. 커피가 혈관 속에 들어오자 지난 밤의 숙취가 깨끗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특별한 커피를 즐기며 우리는 오늘 하루 버닝맨을 어떻게 제대로 즐겨야 할까하며 함께 계획을 세웠다.

제 6장. 작별 인사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빈 커피잔을 바리스타에게 가져다주었다. 이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꼬옥 안아 주었다. 웨이터는 내가 안아준 것보다 더 강렬하게 꼬옥 안아 주었다. 불타는 버닝맨 모형, 아름다운 사막 위의 예술품들, 거대한 나무 건축물들… 버닝맨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수 없이 많지만, 계획하지 않은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는 버닝맨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조차 없지만, 언제나 기대하지 못했던 즐거운 일이 일어나는 것. 음식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나서 돈을 지불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여기 버닝맨의 사람들은 돈이나 그 어떤 물질적인 것을 나에게 기대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과 이 경험과 따뜻함을 나누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마저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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