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8 : So, Why Am I trying to be a Translator?

스토리8 : 나는 왜 번역가가 되고 싶은 걸까?

미리 말하지만 나는 내 직업을 바꾸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왔다고 자부한다. 선생님으로 일하던 5년 동안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은 하루종일 해도 지겹지 않고, 내가 보드스토리를 하려고 보드를 꺼내 들면 신나서 모여드는 아이들을 보며 스트레스가 풀리고, 아이들이 흥미 있어 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함께 배웠다. 앞으로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가장 가까이에서 아이들의 삶과 배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그러면, 갑자기 번역가가 되겠다는 건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는 아니고 여기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통번역가로 활약해왔던 증거가 있다.

증거 1.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호주 브리즈번에서 외국인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부터 아이가 한국인 친구에게 주려고 쓴 손편지도 번역해주고 배우고 싶은 한국 노랫말과 뉴스 기사를 가져오면 그것도 번역해 가면서 가르쳤다. 중학생이었다가 이제는 어느 항공사 승무원이 된 그 아이는 때때로 연락을 해오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기내 반입 금지 품목을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을 부탁해오기도 했다.

증거 2.

사실 첫 번역 경험은 그보다 이전인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아직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었다. 나는 대학교 때 “날틀”이라는 항공잡지를 출간하는 편집 동아리에 들어갔다. 대부분 항공기가 외국에서 제작이 되는 만큼, 항공기 관련 외국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할 기회가 많았고, 선배들은 우리가 번역해야 할 기사를 정해주었다. 참고로 대학교 때 나는 영어를 잘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그 흔한 토익 시험 한 번 준비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막연하게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영어성적이 나쁘지 않았으니 모르는 단어는 찾아보면서 번역하면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그렇지 않다. 그때 당시에 나는 항공기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관련 잡지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flame”을 “불을 뿜는 용”이라고 번역했던 것이 졸업할 때까지 선배들의 놀림감이 되었었다. 제대로 된 번역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내가 번역하는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거 3.

2012년, 캐나다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당연히 다른 모든 유학생이 하는 것처럼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공부했다. 한국 교육 관련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숙제하는 데 이용하기도 했고, 영어 콘텐츠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개인 블로그에 올리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증거 4.

미국 유치원에서 일할 때는 영어가 서툰 한국인 부모님과 선생님 사이에서 통역도 하고 한국인 부모님의 전화를 받아서 외국인 선생님에게 영어로 전달하기도 했는데 때에 따라서는 화가 난 부모님과 선생님 사이를 중재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언어를 순화하고 각각 한국 정서와 미국 정서에 맞도록 조정해서 통역했다.

증거 5.

학교와 직장에서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번역이 내 일상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특별히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고 Netflix를 보다가도 스탠드 업 코미디를 보면서도 이런 표현은 한국말로 어떻게 설명을 하면 영어 표현을 모르는 한국인들에게도 바로 와 닿을까 생각하며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I am gonna kick your ass!”를 “너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어!”라고 자막이 달리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증거 6.

몇 년 전 친구들(Sam과 John)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통역사가 되어서 한국인 승무원이 비행 지연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번역해주고, 친구들이 음식을 주문할 때 산 낙지는 어떻게 먹는 것인지 어떤 소스를 주문하고 싶은지를 한국인 가게 점원에게 통역해서 부탁하기도 했다.

… 하지만 진지하게 “전문번역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사실 따로 있다.

미국에서의 비자 만료로 유치원 근무를 그만두게 되어 갑자기 백수가 되었다. 오랜만의 백수 생활이라 여행도 가고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자고 생각했는데 한 두 달이 지나니 하고 싶었던 일도 다 해보고 좀 심심했다. 특히 평소에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성취감 느끼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몸이 좀 근질근질해져서 블로그라도 다시 시작해볼까 하던 참에 Sam이

넌 글 쓰는 것도 좋아하니까 여유 시간에 전문적으로 글 쓰는 일을 해보는 건 어때?

하며 말을 꺼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웃으면서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받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하며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심지어 글 쓰는 일을 그렇게 쉽게 생각한다고 화도 냈다. 그러고 나서 한 며칠이 지났는데, 평소처럼 점심을 해 먹고 아이패드를 꺼내 들고 블로그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예전에 블로그 글을 쓸 때 영어로 된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썼던 내용을 보게 되었다. 이왕 블로그에 번역해서 글을 올리려면 돈을 받으면서 하는 게 좋잖아? 하면서 번역가를 찾는 사람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러 번역 사이트도 발견하고, 다른 번역가들의 블로그, 웹사이트를 보면서 번역가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과 경험이 있는지, 왜 번역 일을 하는지 어림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해보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에는 교내는 물론 교외에서 주최하는 글짓기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물론 고등학교에서 이과로 진로 결정을 한 후 글쓰기와 많이 멀어졌지만, 대학교 때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취미활동은 종로에 있는 영풍문고나 반디앤루니스 같은 대형 서점에 가서 재밌어 보이는 책을 세 네 권 고른 후 바닥에 앉아 읽고 가는 일이었다.

“좋은 번역가”가 되려면 외국어만 잘해서는 안 된다. 외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외국 문화와 언어 표현에 대한 이해, 거기에 매끄러운 표현을 위해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당연히 한글로 글을 많이 써 보고 다양한 한글 표현을 아는 사람이 더욱더 자연스럽고 세련된 번역을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Sarah Silverman’ 이나 ‘John Mulaney’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면서 웃을 수 있으려면 영어 자체 말고도 북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분명 필요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자막 없이 보면서 웃고 공감하기에 다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스탠드업 코미디가 가장 어려운 장르였다. 내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볼 때마다 Sam이 이해가 필요한 부분(예를 들면 북미에서 90년대에 어떤 광고가 유행했고, 어떤 역사적인 사건을 지금 언급하는지)을 설명해주면서 지식이 쌓이고 또 어떤 소재를 어떤 식으로 풍자하고 비판하는지 이해를 한 후에 비로소 웃으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유튜브와 넷플릭스에서 한글 자막을 비교하면서 다시 보았더니, 재미가 없었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말투나 어휘 선택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물론 언어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보는 것만큼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어도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은 확실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보고 싶었다. “전문 번역가”. 관심 있는 분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지금은 내 전문분야인 “교육”, “사회 문화” , “블로그 콘텐츠”분야를 집중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블로그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 쓰고 싶었던 글을 쓰면서 한국어 언어 감각도 익혀나가는 중이다.

두 언어 사이의 자연스럽고 정확한 번역은 두 문화와 사회 간의 풍부한 지식과 문화, 경험의 교류를 끌어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교육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번역 또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다 보면 곧 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는 일이 되지 않을까 꿈꾼다.